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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소품] 같은 말 (아카스가)

하이큐
소품
작성자
휘엔
작성일
2017-05-23 13:55
조회
722
아카스가 전력 2회차
[안녕]


[소품] 같은 말. (아카스가)
written by 휘엔


- 안녕.

그날, 당신이 현관을 나가며 했던 말은 그게 다였다.

고마웠어. 미안해. 사랑했어. 이런 말도 없이 단 한마디. 안녕이란 말과 함께 그는 나를 버렸고 그렇게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렸다.

함께한 5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간단하게 사라질 수 있는 거구나. 하다못해 그는 그 자신이 쓰던 중 가장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가지고 떠났다. 일할 때 쓰는 노트북, 휴대폰, 서류가방, 손목시계, 당장 내일 입을 옷. 어디 하루 여행을 가도 분명 저것보단 많이 가져갈 것이다. 같은 컵에 꽂혀있는 칫솔도 속옷도 양말도 셔츠도 양복도 커플 잠옷도 커플 식기도 이불도 시계도 책도 사진도 앨범도. 이 집으로 함께 이사를 오며 각자 가져왔고 또 함께 산 모든 것을, 함께 만든 추억을 이곳에 남겨둔 채 떠났다. 내 물건은 나중에 사람을 보내서 처분하도록 할게. 그렇게 말해오는 그에게, 어차피 버릴 거면 내가 할 테니 사람을 보낼 필요는 없다고 하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가 없어서, 난 이 사람이 이렇게 포커페이스에 강했다는 사실을 5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란 것도 헤어질 때가 되어서 처음 알았다.

분명히 날 사랑하는데. 아직 날 사랑하는 게 맞는데. 당신이 날 버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내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면. 내가 미련을 갖지 않도록, 내가 당신을 잊을 수 있도록 더 잔인하게, 더 단호하게 쳐냈어야지. 내가 당신의 물건들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당신이 직접 처리하지 않는 이상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걸 잘 알면서, 아무 말 없이 당신을 잊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하잖아.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던가.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던가.

어느 때는 세상 최고의 악동처럼 장난기를 보이다가도 어느샌가 순하게 웃던 그 맑은 웃음이, 그 표정이 마지막 얼굴과 겹쳐져 흐릿했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볼 용기는 없었다. 그런데도 보고 싶었다. 눈을 감고도 선명하게 보이던 사람이었는데.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헤어지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만큼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가 꿈에서 나올 땐 목 위의 부분만 짙은 안개가 껴 보이지가 않는다.

그의 소식은 가끔 귀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지만, 키워주신 조부모님을 위해 대기업 회장인 조부가 원하는 상대와 결혼을 하고, 아내의 집안이 운영하는 회사와 합병하여 결과적으로 더욱 커진 회사의 이사가 되어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재작년 중순쯤이었나. 그리고 그 뒤로는 일부러라도 그쪽 관련 소식은 찾아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기업이니만큼 그의 회사의 소식은 가끔 TV나 라디오에서 들려왔지만, 내가 일부러 찾은 건 아니니까.

오픈한 뒤로 계속 서 있어서 혹사당한 다리를 툭툭 치며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동네 장사라 오는 사람만 오는 여유로운 카페인데, 근처에 뭐가 있었는지 오늘따라 폭풍같이 손님들이 몰아쳐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뻣뻣해진 어깨를 두드리며 조용해진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언젠가부터 가지고 싶었던 나만의 작은 가게. 소소하지만 맘 편하고 기분 좋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고 이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내 꿈을 이야기하자 케이지에게 어울린다며, 케이지의 가게에 내가 No. 1 단골손님이 될 거라며 활짝 웃으며 내 품에 안겨 오던 그가 이 모습을, 이 장소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 딸랑.

자리에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들려오는 문소리에 오늘은 편히 쉴 팔자가 아닌 것 같다고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서 오세,”

그리고 문이 열리면 가끔 가게 밖에서 나도 모르게 내뱉을 정도로 지겹게 입에 붙은 말이 다 나오지 못했다. 시선을 등장한 남자에게 고정한 채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며, 상대도 당황한 듯 순간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먹은 듯, 고개를 들고 카운터로 다가왔다.

“카푸치노 한잔. 라지 사이즈로.”
“…네.

계산을 마치고 그가 텅 빈 카페를 둘러보더니 원하는 자리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그에게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불가항력이었기에 빠르게 저항을 멈추고 커피를 내리는 중간중간, 현재 가게의 유일한 손님을 흘긋흘긋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창가에 자리 잡은 그의 위로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았다. 밝은 빛 아래의 그는 여전히 나이보다 앳돼 보였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더 날카로워졌고, 조금 더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잔을 꺼내 커피를 따르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수첩을 보고 있던 그가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싱긋, 웃었다. 이제 당신, 나를 보고 웃을 수 있구나.

씁쓸한 마음에 아무 말 없이 그의 앞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가만히 커피잔을 내려다보던 그가 손을 뻗어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잠시 그대로 향을 맡던 그의 입가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커피를 입안에 머금었다. 만족스러운 듯,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였고 입가의 미소가 짙어졌다.

“맛있어.”
“…감사합니다.”

혼잣말이 아닌, 명백하게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 작게 대답하자 그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역시 케이,”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잠시 놀란 듯, 굳어진 미소로 애꿎게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가 말을 끝맺었다.

“역시, 아카아시 군의 커피야.”

그리웠어. 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과연 무엇이 그리웠다는 걸까.

복잡해진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한번 커피를 음미한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게를 둘러보았다. 작은 가게라 볼 것도 없을 텐데, 가게 구석구석을 눈에 담겠다는 듯 느리게 움직이는 시선이 왠지 부끄러웠다.

“좋은 가게네.
“……”
“꿈을 이뤘구나.”

꿈은 이뤘다. 소소하게 동네 주민들이 와서 편히 쉬다 가고, 맛있는 커피 향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편안한 공간에 지금 내가 있으니까. 그러나 꿈에서, 그 공간의 한구석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반만 이뤘던 꿈인데, 상상으로만 그렸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기분이 미묘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실현될 줄은 몰랐기에 솔직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스가와라 씨는 잘 지내셨나요.”

나의 말에,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아내분은, 잘 지내시나요.”

우리 둘의 금기를 구태여 내가 먼저 꺼냈다. 속 좁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 날 버리고 가서 행복한지, 그만큼 날 버릴만한 가치가 있었던 건지.

그런 나의 질문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로 이유를 모를 때 하던 행동이었다. 마치 왜 묻냐는 그 표정에, 나도 모르게 카운터 아래에 숨기고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카아시 군. 모르고 있었어?”

하지만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세게 쥐었던 주먹은 곧바로 이어진 그의 목소리에 어이없이 풀어졌다.

“네?”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가 정말 몰랐나 보네. 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눈앞으로 새하얀 왼손이 흔들렸다.

“자.”

왼손 약지가 비어있었다. 하다못해 자국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왜. 혼란에 가득 찬 내 머릿속을 읽었는지 그가 피식 웃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작년 초에 헤어졌어. 나름 대기업 후계자의 이혼이라면서 미디어 쪽도 좀 시끄러웠는데,”

몰랐어? 마치 어른을 속이고 의기양양한 아이처럼 씨익 웃는 모습에서, 왠지 예전에 나에게 캡사이신을 먹여놓고 웃던 모습이 겹쳐졌다. 작년 초라면, 가게 오픈 때문에 한창 정신없었을 때였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모든 걸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그땐 TV는커녕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에너지바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왜요?”
“그녀가 더는 버티지 못했거든.”
“버티지 못했다니…”
“사랑 없이 돈만으론 살지 못했다는 거지.”

이야기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이는 나에게 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와는 단 한 번도 잔 적 없어.”

처음에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조부 몰래 계약서를 썼다 했다. 그는 그녀를 안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어떤 방법을 쓰든지 그녀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그 대신 그녀는 원하는 대로 집안의 돈을 쓰고, 그녀 아버지의 회사와 그의 회사가 좋은 조건으로 합병해서 서로 챙길 거 챙기자는.

“서로 원하는 것이 뚜렷했으니 그녀도 처음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동의했지만, 점점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
“도대체…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물음에, 그가 왜 그런 걸 묻냐는 얼굴을 했다. 그것도 모르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살짝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너 이외의 사람이랑은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무심하게 내뱉은 그의 말이 내 귓가를 때렸다.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분노가 혈관을 따라 돌기 시작하는지,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말을 이어갔다.

“그쪽은 살면서 정이 생긴 모양이던데, 나는 그럴 생각이 하나도 없으니까 결국은 폭발한 거지. 계약서를 할아버님께 보여드리고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이혼서류를 내밀더라고. 나야 아무 불만 없이 할아버님 앞에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물론 저쪽이 상처는 받았겠지만, 저쪽도 지금까지 챙긴 거랑 위자료를 받아갔으니, 결국엔 그다지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든? 할아버님은 물론 대로하셨지만, 내가 결혼하는 걸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으시다는 할아버님의 소원은 들어드렸으니까.

느긋하게 한쪽 다리를 꼬며 시니컬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내가 모르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모습이었다.

“처음 시작이야 어쨌든, 지금은 회사의 후계자로서 자리도 잘 잡아가고 있으니까 내가 할아버님께 할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하거든. 요즘 세상이야 이혼은 뭐 흠도 아니지. 할아버님은 당연히 쇼크셨던 모양이지만.”

입술 한쪽 끝을 올려 비릿하게 웃는 모습에, 마치 다른 세계에 있던 스가와라 코우시가 내 눈앞에서 말하는 착각에 빠졌다.

“우리 부부가 행복하지 않았고, 내가 결혼 생활을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건 알고 계셨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모르셨던 거지. 고지식하신 옛날 분이시니까, 남자와 남자가 붙어먹는 건 그분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니, 할아버님이 생각하시기에 손자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여자를 붙여놓으면 결국엔 내가 마음잡고 행복하게 살 줄 믿으셨던 거겠지. 아무리 마음에 없는 상대라도, 몸 섞으며 같이 살다 보면 정이라도 생겨서 맘도 붙이고, 그러면서 살면 되는 거니까.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그러셨고, 지금도 아주 금실 좋게 살고 계시거든.”

그 뒤로 그의 조부가 또 이리저리 선 자리를 가지고 왔지만, 당연히 거절했다고 한다.

“나와 할아버님의 욕심의 피해자는 둘이면, 충분해.”

커피잔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로 닿았다가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하나는 전 부인이고 또 하나는 나라는 건가.

“손자는 보여드리지 못할 테니까, 내 후계자가 필요하다면 적당히 친척 애나 양자를 들어서 선택하거나, 아예 전 부인 쪽에 넘겨줘도 되는 거고. 그럼 적어도 그때까진 회사를 더 키우자고 생각해서 이혼 뒤에는 일에만 집중했어. 사실 난 나 하나 먹고살 만하기만 하면 상관없어서 그다지 회사에 애정도 미련도 없지만, 딱히 다른 할 일이 있는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한 1년을 사니까 그래도 회사에서의 내 입지도 견고해지고, 낙하산으로 들어온 애새끼 주제에 라면서 업신여기는 인간들도 사라지더라고.”

나 이번 주에 전무가 돼. 그걸 반대하는 사람도 없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 담담히 내뱉는 그 모습에서 기쁨과 성취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거 알아? 6개월 전부터 달마다 새로운 보고서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갑작스레 틀어진 이야기의 방향이 보이지 않아 눈만 깜빡이는 나를 보며 그가 정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래서 비서한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뭔지 알아?”
“……”
“「아카아시 케이지」의 근황 보고서래.”
“!?”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왜? 이젠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를 왜? 나도 모르게 감시당했다는 불쾌감보다 의문이 앞섰다.

“웃긴 게, 난 그런 걸 지시한 적이 없거든. 누구냐고 다그쳤더니, 무려 그걸 지시한 사람이 할아버님이라는 거야. 내가 너와, 남자와 함께한다는 사실에 치를 떠셨던 그분이.”

하.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은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화가 났을 때 나오는 저 버릇은 여전했다.

“당장 그만두라고 지시했거든? 근데도 매달 1일만 되면 보고서가 올라오는 거야.”

혼자 일에만 미쳐 사는 손자가 안쓰러우셨나봐. 이 상태로는 내가,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인간이 말라 죽겠다 싶으셨나봐. 웃기지? 스가와라 코우시를 인간답게 만들어준 사람을 떼어낸 건 할아버님이신데, 하나뿐인 소중한 손자 다시 살리겠다고 붙이시려고 하는 게. 얼마나 이기적이야.

그가 입꼬리 한쪽을 끌어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여전히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입술에서 기어코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 입술에 손을 뻗어 그 피를 닦아내고 내 손가락을 물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대신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보고서 읽어봤나요?”

그래서 오늘 여기에 나타난 건가요?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요? 나에게 오지 않았어요?

차마 끝말은 잇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는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 내가 알던 스가와라 코우시와는 조금 달라졌지만, 내 눈앞에 앉아있는 건 여전히 내가 사랑하던 스가와라 코우시였다.

“아니. 안 읽었어.”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또 나를 상처입히는 말이었다. 나를 사랑하는데 왜 당신은 나를 매번 이렇게 나에게 잔인하게 대해?

“왜. 도대체 왜요.”
“……”
“도대체 왜!!!”

손만 뻗으면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 있는 보고서를 눈앞에 두고. 나도 기억하지 못할 내 일상 하나하나까지 다 알 수 있었으면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굳이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오만하게 앉아서 보던 그가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시선을 맞춰왔다.

“내게 너의 일상을 흔들어 놓을 자격은 없으니까.”

읽으면 보고 싶어지고, 보고 싶어지면 찾아올 것이고, 찾아오게 된다면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게 될 테니까. 담백하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눈동자가 올곧았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했을 때 볼 수 있던 눈빛이었다.

“그럼, 당신은? 당신은 그렇게,”

평생을 그렇게, 혼자 살려고 했다고?

“그게 내 의무니까.”

날 상처입혔다는 사실을 알고도 담담한 그 표정에 속이 터졌다.

“그럼 나는? 나는요?”

당신이 날 버리며 흔들고 간 여파에 아직까지 휘둘리고 있는 난 어쩌라고?

나의 말에 평온했던 그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밉지 않아? 원망스럽잖아.”
“네. 당신이 밉고, 당신이 원망스러워요.”

날 이 나락으로 떨어뜨린 당신이.

“그리고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뿐이라는 이 현실이 끔찍해요.”

당신이 떠난 뒤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수면제에 익숙해졌다. 나만의 가게를 가지고 싶다는 꿈을 이뤘지만 충만함 대신 공허함이 자리를 잡았다. 그와 체격이 비슷한 사람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필사적으로 그와 닮은 점을 찾아내려는 나 자신이 어이없었다. 가끔 가게를 나가며 번호를 건네는 손님들 중, 분명히 내 타입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도 하기 전에 반사적으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도 싫었다. 아직도 이사 가지 못한 채 살고있는, 나에게는 너무 큰 맨션의 집세를 겨우겨우 허덕이며 내는 것도 지쳤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넓고 큰 침대도 답답했다. 어차피 혼자 쓰는 침대, 가운데에서 편하게 자도 될 텐데,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침대 끝에서 눈을 뜨는 것도 지겨웠다.

이 생활을 평생 해야 한다니. 여기서 얼마나 더 버티라고 하는 거야, 당신은. 도대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야, 스가와라 코우시.

눈앞이 일렁이더니, 이내 흐려졌다. 서러움. 괴로움. 미움. 억울함. 우울함. 저 밑에 꾹꾹 눌러두고 있던 이 세상의 모든 어두운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런 나의 모습을, 다 큰 성인 남자가 펑펑 울고 있는 모습을 당신은 어떻게,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보고 싶은데 쉴 새 없이 나오는 눈물이 그걸 방해했다.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공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5초일 수도 있고 5분일 수도 있는 그 순간이 영겁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건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였다.

저벅저벅, 구두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입술에 타인의 체온이 닿았다. 여전히 차가운 손끝이 내 입술을 벌리고 가볍게 표면을 쓰다듬었다. 쓰라린 감촉에 그제야 이번에는 내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느리게 눈을 깜빡여 초점을 바로잡고 천천히 멀어져가는 하얀 손에 시선을 고정했다. 붉은 피가 묻은 엄지손가락이 그대로 그의 입술로 향했다. 하얀 손을 더럽힌 자국은 붉은 혀로 인해 그 흔적을 감췄다. 만족스럽다는 듯,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그의 입술 끝에 시선이 사로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안녕.”

그런 나를 보며 눈꼬리를 예쁘게 접은 그가 말했다. 같은 말이지만 5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엔 그의 미소가 눈앞에 함께 있다는 것.

“또 올게.”



May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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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카스가 전력 참여입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아카스가 전력 탄생을 축하합니다!! 기념할만한 1회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2회에라도 참여해서 혼자 뿌듯해하고 있네요.어째 아카스가는 글을 쓸 때마다 어두운 분위기가 되는 것 같아 제 안의 캐해석을 다시 해야 하나 싶지만 그래도 이번엔 나름 해피엔딩이니까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아카스가가 우주 대메이저가 되는 그 날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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