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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중편] 주고받기 3 (아카스가)

하이큐
중편
작성자
휘엔
작성일
2018-03-23 14:48
조회
328
[중편] 주고받기 3
written by 휘엔


인생의 흑역사를 갱신한 그 날 이후, 나와 아카아시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처음에는 약속했던 밥을 사겠다고 연락을 했지만, 그 뒤로도 연락을 하는 빈도수가 늘었다. 꼭 만날 약속이 아니더라도 그날 있던 일을 소소히 나누거나, 오늘 학식에 마파두부가 나왔는데 하나도 안 매웠다와 같은 시시콜콜한 잡담을 반복하면서, 그와의 거리감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그와 나 사이에 친숙함이 불어날수록 그에 관해 알게 되는 것도 늘어났다.

현재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전과를 고민 중이라는 것. 배구를 완전히 그만둔 자신과는 달리 그는 배구 동아리에 들어가 여전히 취미로 배구를 하고 있다는 것. 여자친구에게 차였다며 의기소침모드에 들어간 보쿠토에게 어제부터 침대를 뺏겨서 그 자신은 바닥에서 자고 있다는 것.

솔직히 말해 매우 귀찮습니다. 라고 적힌 메시지를 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특유의 서늘한 표정으로 보쿠토에게 저 말을 스트레이트로 날리는 아카아시의 얼굴을 떠올리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기간은 짧았지만, 마치 다이치, 아사히와 함께 있을 때처럼 편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이치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기 전의, 오로지 친구의 감정만 가지고 있던 때의 느낌과 닮아있었다. 도쿄에 올라온 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은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리운 감정이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을 오랜 시간 괴롭게 만들던 것들을 잊을 수가 있었다. 스가와라 코우시와 사와무라 다이치의 관계. 스가와라 코우시가 사와무라 다이치에게 가지고 있는 비밀스런 감정. 때로는 사와무라 다이치라는 존재까지. 그래서 아카아시와 보내는 시간이 더 편했다. 이야기할 때마다 입을 잘못 놀려 본심이 튀어나올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었고, 일그러지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었다. 누군가가 폐를 움켜쥐는 것처럼 답답했던 가슴이 그 순간만은 겨우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게 반복되자 나중에는 그와 함께 있지 않아도, 그와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거나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였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다이치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그와 메시지를 하느라 휴대폰을 자주 보게 되거나, 다이치와의 대화 중에 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마치 그가 내 숨통을 쥐고 있는 것처럼. 예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다이치와의 1분 1초가 너무나 절실했으니까.

“스가, 혹시 요즘 연애해?”

그리고 그런 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다이치가 아니었다. 실실 웃으며 물어오는 다이치의 말에 아카아시의 메시지에 답장하던 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뭐?”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

그럴 리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내 눈앞에 앉아있는 너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뭐랄까, 요즘 계속 폰만 보고 있고. 나랑 얘기하고 있을 때도 가끔 스가가 여기 없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뭐야, 다이치. 질투해?”
“질투는 아닌데 가끔 조금 쓸쓸해.”

그렇겠지. 감정을 자각한 뒤 지금까지, 그와 있을 때는 언제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곤두세워 오로지 그에게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스가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나, 응원할 거니까!”
“네네. 감사합니다아―.”
“진짜라니까?”
“알았어. 근데 좋아하는 사람 아니야.”
“진짜? 나한텐 안 숨겨도 돼.”
“진짜 아니야. 묘하게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생겨서.”
“흐음. 스가가 그렇게 말하는 상대는 대학 와서 처음인 것 같은데.”

라이벌 등장인가! 라고 과장되게 덧붙이는 그의 말에 작게 웃었다.

“바―보. 그 어느 누가 와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는 너야, 다이치.”

장난스러운 분위기에서 나온 진지한 말에 그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너도 나에게 마찬가지야, 스가.”
“…땡큐.”

붉어진 귓가로 대답하는 그에게 진심을 담아 작게 속삭인 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몸을 일으켰다.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자, 다행히 수년간 갈고 닦았던 포커페이스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찬물로 세수를 하고 다시 고개를 들자,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시큰시큰한 눈가를 다시 한번 찬물로 닦아냈다.

친구. 거짓말은 아니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원해오고 꿈꿔왔던 관계로는 이뤄지지 못하겠지만, 그의 친우의 자리를 포기할 생각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넘겨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기쁘고, 동시에 또 슬펐다. 분명히 지금까지 이 관계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을 친 건 자신이고 그 노력에 비례해서 이 관계는 잘 이어지고 있는데, 간사한 자신의 마음은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하나 남은 관계까지 부수고 싶지 않아서, 어떠한 형태로든 그의 곁에 있고 싶다는 핑계로 고백조차 하지 않는 겁쟁이 주제에.

거울 안의 내 모습이 오늘따라 더더욱 못나 보였다. 지친 남자의 얼굴로 울상을 짓고 있으니 이쁘게 봐줄래도 봐줄 수가 없지.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그만하고 싶다. 정말 그만두고 싶다. 이성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감정이 자꾸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다. 그 사실이 지겹고, 지쳤다.

이렇게 한 번씩 마이너스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참 힘들었다. 너무 오래 있으면 다이치가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 부르르

뒷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작게 진동했다.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보자 메시지 알림이 떠올라 있었다. 발신자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손의 떨림이 진정되는 걸 느꼈다. 잠금화면을 풀고 메시지창을 확인하자 사진과 함께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오늘 노을이 참 예쁘네요.]

재회한 날 보았던 빌딩 사이의 저녁놀과 닮은 화면 속의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깜빡깜빡. 단순한 그 동작을 반복하자 일그러졌던 시야가 다시 맑아졌다.

어쩜 너랑은 이렇게 타이밍이 잘 맞을까.

“다음에 보면 맛있는 거 사줘야지.”

이제 다이치에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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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앜슥입니다! 써놓고 보니 이번 편은 짧네요.
근데 이걸로 비축분이 다 끝났습니다...무사히 완결 내서 세터온에 낼 수 있을까...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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