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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Junk] 소낙비 (오이스가)

하이큐
Junk
작성자
휘엔
작성일
2017-07-23 19:11
조회
807
[Junk] 소낙비
written by 휘엔


3:17pm

아까까지만 해도 파랬던 하늘이 잠시 잡지에 눈을 판 사이에 진한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저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천둥의 우르릉대는 소리와 꾸물꾸물 밀려오는 먹구름이 큰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곧 한바탕 쏟아지겠네. 라고 생각한 오이카와가 들고 있던 월간 배구 잡지를 덮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평소 이 시간이면 집에 있을 연인이었지만, 오늘은 갑자기 클라이언트와 미팅이 잡혔다며 정오가 되도록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던 오이카와의 볼에 가볍게 온기를 남긴 뒤 외출했다. 오랜만의 휴일. 사랑하는 연인과 느긋하고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자신 혼자 남겨진 집에서 눈을 뜬 오이카와는 불만을 가득 담은 채로 볼을 부풀린 채 삐죽거렸다. 배고픔에 연인이 차려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연인이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런지, 휴일에 읽으려고 기대했던 잡지의 기사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스가 쨩 우산 가져갔나?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장을 열었다. 하나, 둘, 셋. 우산 수가 줄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오이카와 그대로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툭,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3:32pm

오늘 일기예보에선 한때 날이 흐리겠지만 대체로 맑은 하루가 되겠다고 했는데. 역시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 된다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서 비가 오는 줄 몰랐는데 지상에 나온 그를 반기는 것은 매섭게 땅을 향해 내리꽂히는 장대비였다. 우산 없는데 어쩌지...주위를 둘러보니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그와 같은 표정으로 역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날씨를 체크하자 소나기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아니, 무슨 소나기가 이렇게 무섭게 내려.

“아.”

그러고 보니 역 안에 편의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스가와라가 급하게 편의점으로 달려갔지만, 같은 생각을 한 건 스가와라 뿐만이 아닌지 스가와라가 마주한 것은 텅텅 빈 우산 진열대였다. 마지막 희망을 잃은 채 편의점을 나오는 스가와라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젠 좀 멎지 않았을까. 라는 소망을 품은 채 터덜터덜 다시 역 입구로 향했지만 그새 더 거세진 빗줄기에 스가와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토오루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할까.

소나기라면서 어째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하늘을 보며 집에 있을 연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올 땐 자고 있었는데 지금쯤이면 일어나있으려나. 밥은 먹었나. 역시 비는 맞기 싫으니 잠시 고민하던 스가와라였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다지 비를 좋아하지 않는 연인의 휴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뛰자.

쫄딱 젖겠지만, 오늘은 날도 덥고 얼마 전에 감기 걸렸던 것도 나았으니 설마 또 걸리진 않을 거 아냐. 집에 가서 바로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 되는 거지. 역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천천히 걸으면 약 20분. 빨리 뛰면 15분이면 갈 수 있을 거야. 과거 한창 배구를 하던 18세의 스가와라의 체력이라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데스크 워크와 운동 부족으로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28세의 스가와라에게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 치명적인 사실을 간과, 또는 애써 무시한 스가와라가 밖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하나- 두울-



3:38pm

“스가 쨩! 스토오옵!!!”

순간 들려온 다급한 목소리에 막 뛰어나가려고 움직였던 몸이 삐끗하며 비틀거렸다.

“아니, 스가쨩은 제정신이에요? 이 비를 왜 맞아? 감기 나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감기 걸리고 싶어?”
“…아니 그게…지난번에 걸렸으니까 이젠 안 걸릴까 했지…”

씩씩거리며 쏘아져 오는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코우 쨩은 바보예요? 멍청이야??”

정말로 화가 난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말해오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자, 스가와라 자신이 감기에 걸렸을 때 속상해하며 밤새 병간호를 했던 모습이 겹쳐졌다.

“미안.”

그래. 토오루를 위해서라도 건강 조심해야지. 어리석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솔직하게 스가와라가 사과하자 그제야 오이카와의 미간이 조금 풀어졌다.

“도대체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한 건데. 오이카와 씨가 그렇게 못 미더워?”

서운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볼을 부풀리는 오이카와를 보니, 세차게 내린 비 때문에 신발과 바지 무릎까지 쫄딱 젖어있었다.

“아니, 너 쉬는데 괜히 방해될까 봐. 너 비도 싫어하고.”
“코우 쨩과 함께라면 비도 좋아.”

정색하며 말하는 오이카와를 자세히 보니 어깨도 젖어있어서 우산도 쓰는 둥 마는 둥 하며 급하게 뛰어왔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혼자 쓸쓸했단 말이야. 은근하게 거리를 좁혀오며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어리광이 잔뜩 묻어있어, 스가와라가 활짝 웃으며 오이카와의 어깨를 가볍게 주먹으로 쳤다. 자신을 위해 고생한 오이카와를 안고 싶은데 사람 많은 밖이라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알았어. 미안해. 얼른 집에 가자.”

그거 쳤다고 스가 쨩 폭력반대! 라며 호들갑을 떠는 오이카와의 소매를 잡아끌자, 웃으며 오이카와가 들고 있던 우산을 폈다.

팡! 소리와 함께 우산에 매달려있던 물방울이 밖의 빗방울과 섞여 사라졌다.



3:43pm

찰박찰박. 빗물로 덮인 아스팔트 위의 발걸음 소리가 둘 사이에서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어떻게 온 거야?”
“뭐가?”
“나 언제 올 줄 알고?”
“이제 슬슬 스가 쨩 올 때다 싶었지-”

남친의 감? 애교 넘치게 윙크를 하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스가와라가 피식 웃었다. 엣, 스가 쨩. 오이카와 씨 못 믿는 거야?

“근데 왜 우산은 한 개야?”

이 쏟아지는 비에? 큰 우산을 함께 쓰고는 있지만 머리만 안 젖었다뿐이지, 이미 둘은 빗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스가 쨩, 무드없게.”

연인은 한 우산 아래 들어가야 하는 거 몰라? 이래야 스가 쨩이랑 같이 붙어있지.

쪽.

우산 한쪽이 기울어지더니, 내려간 우산 아래에서 오이카와가 잽싸게 스가와라의 입술을 훔쳤다. 숙였던 허리를 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에, 잔뜩 붉어진 얼굴의 스가와라가 기겁했다.

“미쳤어? 밖이잖아!”
“우산으로 가려져서 안 보여. 거기다 이 비에 누가 우리를 신경 쓰겠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붓는 비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온 신경은 이 비를 뚫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을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아, 코우시. 이리 좀 와. 어깨 다 젖잖아.”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싸는 오이카와 행동에 다시 한번 놀란 스가와라가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대로 손에 힘을 주어 끌어당기는 오이카와로 인해 오이카와의 품으로 끌려들어 갔다.

“아무도 안 봐. 아무도 신경 안 쓴다니까. 봐도 다들 우산 하나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거야.”

어깨를 감싸고 있는 힘을 풀지 않으며 토닥이는 오이카와의 손길에, 스가와라가 저항을 멈추고 그대로 오이카와의 발걸음에 맞춰 걷기 시작했다. 하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토오루와 밖에서 붙어 다니겠어.

한여름의 찐득거리고 무더운 날씨였지만 얇은 천을 너머 느껴지는 온기가 기분 좋았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붙어 있고 싶은데. 저 앞에 보이기 시작한 둘의 보금자리가 가까워질수록 괜히 안타까웠다.



4:05pm

“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조금씩 느려지던 발걸음이 완전히 멈춘 건, 스가와라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쳤다.”

최대로 열어놓았던 수도꼭지를 잠그듯, 갑자기 뚝 그친 비에 오이카와와 스가와라의 시선이 마주쳤다. 고개를 들자 검은색 우산 너머로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와- 이렇게 갑자기 멈추기 있어?”

그것도 집에 다 와서. 나름 고생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약 120m 정도 남은 거리에 갑자기 비가 그치니 왠지 허탈했다. 커다란 우산을 접으며 투덜대는 오이카와를 그래도 짧게 데이트해서 좋지 않았어? 라는 말로 달래던 스가와라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동시에 스가와라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토오루. 저기 봐봐.”
“뭔데? 우왓!”

눈앞에 선명하게 늘어진 무지개가 파란 하늘과 구름 낀 하늘 사이를 잇고 있었다.

“이렇게 긴 무지개는 처음 봐.”
“나도.”
“집에 있었다면 저 광경은 못 봤겠지?”
“그러게.”
“토오루랑 같이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기쁘다는 듯 곱게 휘어진 눈 끝의 눈물점이 예뻐서, 무지개도 예쁘지만 자신의 옆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사랑스러워서, 오이카와가 여전히 무지개에서 시선을 떼놓지 못하는 스가와라의 손을 잡아끌었다.

“스가 쨩. 저 무지개 끝에 뭐가 있는지 보여?”
“무지개 끝…? 어?!”
“무지개 님의 계시라고 생각하지 않아?”
“너 진짜-! 아직 낮이야!”
“조금만 있으면 저녁인데 뭘.”
“토오루, 나 배고파.”
“이따 내가 맛있는 마파두부 해줄게~”
“와…너 진짜…”
“얼른 들어가자! 일단 젖었으니까 같이 샤워부터 하고~”
“이봐요. 오이카와 씨. 사람 말 듣고 있나요?”
“네네~가자가자~”

한창 들떠 신난 오이카와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한 스가와라를 끌고 가다시피 하며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오이카와와 스가와라의 침실 창문 끝을 향해 뻗어있던 무지개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고인 물웅덩이에 비친 푸른 하늘이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맞춰 일렁였다. 강렬했던 소낙비의 끝은, 평화로운 오후였다.



July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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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오슥이네요! 방금 확인해보니 마지막으로 오이스가 글을 쓴 게 4월이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트위터에서 오슥 썰을 많이 풀어서 그런지 몰랐네요;; 어제 갑자기 밖이 어두워지더니 쏟아지는 비를 보니까 달달 포카포카한 오이스가가 보고 싶어져서 짧게 끄적여봤습니다.

트위터에도 올렸던 아래의 사진은 지난 4월에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봤는데 무지개가 떠 있어서 신기해하며 찍었던 사진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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