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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EFEND][소품][if] 절벽 위의 꽃 02

G・DEFEND
소품
작성자
휘엔
작성일
2016-05-27 21:39
조회
279
[소품][if] 절벽 위의 꽃 02

[if] 1. 사실 하시즈메가 대단한 집 도련님이라면? -2편-

언제 겨울바람이 쌩쌩 불었다는 듯이 성큼 다가온 봄이 반가운 것도 잠시, 올해의 봄은 변덕스러운 성격인지 하루의 일교차가 심해 올봄의 JDG에는 예상치 못하게 감기 환자가 늘고 있었다. 거기다 매년 돌아오는 화분증과의 싸움까지 겹쳐진 최근의 닥터 하시즈메의 일과는 매우 바빴다.

“수고- 닥터.”
“수고하십니다, 니시와키 씨.”

기숙사에 있는 감기 환자에게 약을 건네준 뒤 의무실에 돌아가기 전에 관내를 순회하던 하시즈메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외경비반이었다.

“감기 환자는 아직도 많아?”
“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니만큼 한번 돌면 잠잠해질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네요.”

제가 부족한 탓에...라고 낮게 중얼거리는 하시즈메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요 며칠간 한밤중에 응급환자로 인해 호출이 많이 들어와 잠을 설친 탓이었다. 낮에도 쉴 틈 없이 일하고 밤에 야근까지 하는 일이 잦아져 수척해진 얼굴이 안쓰러웠다.

“닥터는 열심히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고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해.”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 정도까지는...”
“거기까지.”

점점 땅으로 향하던 하시즈메의 시선이 니시와키의 한마디에 다시 위로 향했다.

“닥터가 저희들을 언제나 생각해주시고 계신다는 건, 저희가 제일 잘 알아요.”
“그럼요. 닥터가 언제나 저희들을 돌봐주시니까 아플 때도 안심이에요.”
“-라는데?”

어느새 다가온 이케가미와 모토키의 말에 하시즈메의 눈가가 살짝 붉어진다. 그리고 이내 조금 전의 자책을 털어내듯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응. 고마워요, 다들.”

그런 하시즈메의 모습에 하시즈메의 곁에 있는 세 명과 주위의 다른 외경비반 대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때,

“시노.”
“?”

닫혀있던 철문 밖에서 들려오는 하시즈메의 이름에 모두의 시선이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향해졌다. 하시즈메를 친근하게 부르는 중년 남자에 대한 호기심 어린 다수의 시선과 경계심 가득한 시선 하나가 일시에 자신에게 몰리자 약간 당황하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하시즈메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큰형님!”

‘큰형님????’

하시즈메에게서 나오는 생소한 호칭에 놀라는 대원들을 뒤로하고 대원이 열어준 문으로 나간 하시즈메가 서둘러 남자에게로 다가가자 남자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걸린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네 생각이 나서 말이지.”
“바쁘실텐데...”
“막내가 얼굴을 도통 보여주질 않으니 아쉬운 이 형이 와야지.”
“형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기색을 내비치며 웃는 하시즈메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흩트리는 남자의 행동과 그런 그의 손길을 받는 하시즈메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어린아이가 수줍게 웃고 있는 듯한 하시즈메의 모습이 낯설었다.

“할아버님이랑 삼촌이랑 숙모 모두 건강하시죠? 아, 작은형님도요.”
“그럼. 근데 집안 막내들이 도통 얼굴을 안 보이니 서운해하시더라. 특히 할아버님이.”
“...저희가 어떻게 가겠어요.”
“요즘은 그 일에 대해서는 많이 풀린 듯하시다. 오히려 너희들이 얼굴 안 비춘다고 더 노여워하시면 하셨지.”

남자의 말에 여전히 죄송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막냇동생을 보던 남자의 시선이 하시즈메의 뒤편, 철문 안에서 자신들에게 향해있는 대원들에게로 옮겨져 마지막에는 니시와키에게 고정됐다.

“저 뒤에 있는 분들이 국회경비대분들이니?”
“아, 네.”
“다들 좋은 분들 같구나.”
“네.”
“좋은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건 행운이니 소중하게 해야 한다.”
“네.”

피곤해 보이지만 예전보다 훨씬 좋은 눈을 하고 있는 막냇동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니시와키와 눈을 마주한 남자가 가볍게 묵례를 하자 니시와키도 함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얼굴 봤으니 됐다. 다음에 식사라도 함께하자.”
“미리 연락을 주셨다면 함께 점심이라도 했을 텐데...”
“너 바쁠 거 뻔히 아는데 무슨. 다음에 느긋하게 시마도 함께 셋이서 보자꾸나.”
“택시 타고 가실 거죠? 저 앞까지 같이 가요.”
“어허. 일하는데 땡땡이라니.”
“형님이 오셨는데 이 정도는 하게 해주세요.”

서운함과 미안함을 감추기 위해 부리는 막내의 좀처럼 보기 힘든 고집에 짐짓 못 이긴 척 남자가 택시 승강장까지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아이고. 이게 누구야. ㅇㅇ종합병원의 부원장님 아니신가.”

국회를 빠져나오던 차 한 대가 하시즈메와 중년 남자의 앞에 멈춰 섰다.

“스즈키 선생님 아니십니까.”

열린 차 창문으로 인사를 건넨 사람은 국회의원 중의 하나인 스즈키였다.

“오랜만일세.”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시지요?”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그냥 그렇지 뭐.”
“아직 정정하신데요. 앞으로도 건강검진 이외의 일로 저희 병원을 찾지 않으시도록 계속 건강하셔야 합니다.”
“하하하. 여전히 부원장님은 입담이 좋아. 원장님도 정정하시고?”
“네. 정정하십니다.”

아예 차를 한쪽에 대도록 지시한 뒤, 차에서 내린 스즈키의 눈이 남자의 옆에 서 있던 하시즈메에게로 향했다.

“하시즈메 선생은 부원장님과 아는 사이인가 보지?”

예전에 국회에서 벌어진 난투극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해줬던 하시즈메를 기억하고 있는 스즈키가 하시즈메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차에서 친근하게 있던 둘의 모습을 본 듯했다.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제 막내 사촌 동생입니다.”
“오호. 그런가? 지난번에 국회에서 다쳤을 때 하시즈메 선생이 너무 치료를 잘 해줘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게 다 부원장님을 닮아서 그런가 보군.”

기분이 좋은 듯 호탕하게 웃던 스즈키의 말은 비서가 다가와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야 한다고 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고 셋에게 집중된 국회 관계자와 JDG대원들의 시선은 스즈키가 떠나고 하시즈메가 남자를 정류장까지 바래다줄 때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식당.

“들었어? 오늘 낮에 닥터 이야기?”
“어. 들었어. 완전 대박.”
“찾아온 사람이 닥터 사촌 형님이라며? 근데 그 사촌형님이 무려 그 ㅇㅇ종합병원의 부원장님!”
“헐, 진짜?? 그 ㅇㅇ종합병원??”
“그래. 완전 유명한 그 ㅇㅇ종합병원!”

ㅇㅇ종합병원은 일본에서 3위 안에 드는 종합병원으로서 도쿄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일본 각지에 진료센터를 운영 중인, 시설과 의료수준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병원 중 하나이다.

“완전 대단한 집안의 자제분이셨네, 닥터...”
“그러니까. 근데 왜 ㅇㅇ종합병원으로 안 들어가셨을까?”
“그러게. 닥터의 누님도 ㅇㅇ종합병원이 아닌 다른 데서 일하고 계시지?”

여럿이 모인 왁자지껄한 식당의 분위기 속에서 단연 화제가 되는 것은 단 하나의 주제였고 그런 식당의 소란스러움은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일순 조용해졌다.

“...응?”

문밖에서 들려오던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들이 자신이 식당에 발을 들인 동시에 멈춘 것을 느낀 하시즈메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에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 그제서야 대원들의 시선이 슬금슬금 흩어져갔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직접적으로 보는 시선이 사라졌을 뿐이지 여전히 몰래몰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은 여전했다.

“......”

아무리 둔한 하시즈메라도 지금 식당에 흐르고 있는 오묘한 분위기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한 자리에 서 있는 하시즈메를 식당에 먼저 와있던 니시와키가 이시카와, 이와세, 크로우와 함께 있던 자신들의 테이블로 하시즈메를 이끌었다.

“...저기...제가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요...?”

하시즈메가 자리에 앉고도 이어진 어색한 침묵을 참지 못하고 하시즈메가 묻자 이시카와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건 아닌데...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있지, 닥터- 오늘 닥터를 찾아오셨던 분이 ㅇㅇ종합병원의 부원장님이라는 게 사실이야?”

‘나이스, 크로우 씨!!’

현재 식당에서 가장 핫(hot)한 주제이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자칫 실례를 범할 수도 있기에 궁금해도 차마 묻지 못하는 대원들을 대신해 직접적으로 묻는 크로우의 말에 대원들의 무언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그런 크로우의 질문에 하시즈메가 그제야 왜 식당의 분위기가 이런지 알아챈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것 때문이었어요? 난 또 뭐라고.”

전 제가 큰 실수라도 한 줄 알고 진짜 걱정했어요. 라고 웃으며 덧붙이는 하시즈메의 눈가가 약간 붉어진 것을 알아챈 것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 정도였다.

“오늘 오셨던 제 사촌 형님이 ㅇㅇ종합병원의 부원장님이라는 건 사실이에요.”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긍정하는 하시즈메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며 옆 테이블의 대원이 질문을 던져왔다.

“그, 그럼 닥터는 왜 ㅇㅇ종합병원으로 안 가시고 여기로 오셨어요?”

가족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자신도 의사라면 가족의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더욱이 그 병원이 일본에서 알아주는 병원이라면.

“으음...그게...”

자신과 시마가 ㅇㅇ종합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을 때 가족을 포함한 주위에서 셀 수 없이 들어왔던 말이었다. 특히 위험한 JDG를 선택한 자신은, 이미 아스팔트까지 깔려 자동차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길도 없는 오지의 산을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 대원들의 마음을 읽은 하시즈메가 곤란하다는 듯, 약간은 부끄럽다는 듯 말을 흐린다.

외모 때문에 스토커가 붙고 주위에게 얕보이는 약한 자기 자신이 싫었기에 힘든 길을 가며 성장해가는 JDG를 알았을 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JDG에 대해 생각하고 동경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JDG의 일원이 되어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JDG에 오고 싶었거든...”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자 왠지 부끄러워진 하시즈메의 귓가게 붉게 달아올랐고 그런 하시즈메가 속삭이듯 내뱉은 대답에 답을 들은 대원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약 5초 뒤,

“닥터어어어어~~~~~~”
“단지 그 이유 하나로~~~~~!!!!!”
“우오오오오오~~~~~”
“완전 감동이에요오오오~~~~~”

식당은 감동받은 대원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고, 그런 대원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하시즈메를 어느새 한 손에 하시즈메의 식사를 든 니시와키가 식당 밖으로 조용히 이끌었다. 대원들이 제일 궁금해하던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줬으니 이 이상으로 하시즈메에게 대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질문공세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내일, 늦어도 이틀 뒤면 소동은 가라앉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니시와키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지만.

다행히 식당에서 기숙사까지 돌아가는 길에 다른 대원들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빠른 걸음을 유지한 채 방으로 돌아온 니시와키와 하시즈메는 문이 닫히자마자 서로를 바라본 뒤 작게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도대체 이제 무슨 소동인지...”
“그러게.”

트레이를 내려놓은 뒤 여전히 붉은 기가 남아있는 하시즈메의 목덜미에 손을 뻗어 부드럽게 뺨까지 올라가 가만히 쓰다듬는 니시와키의 행동에, 평소 같으면 부끄러워하며 피할 하시즈메가 오늘은 어리광을 부리듯 니시와키에게 자신을 맡겼다.

“전 제가 엄청 큰 잘못을 한 줄 알았어요.”

자신이 식당에 발을 딛자마자 순간 조용해진 식당과 자신에게 내리꽂히는 대원들의 시선. 설마 자신이 무슨 의료미스라도 저지른 걸까. 아니면 설마 니시와키와의 관계가 탄로 난 것인가.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을 돌아다녔을 수많은 생각들 중 가장 무서웠던 것은 ‘너에게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자격은 없어.’ 라고 누군가에게 듣게 되는 상상.

“시노...”

물론 그런 것이 아닌 가볍고도 짧은 헤프닝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 새하얗게 질리던 하시즈메의 얼굴과 오해가 풀린 그 순간 울컥했던 하시즈메의 눈가를 떠올린 니시와키가 하시즈메를 강하게 껴안았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평소에 말은 하지 않지만 가끔씩 보이는 의사로서의 불안, 그리고 부대 내 연애금지와 니시와키 자신과의 관계가 알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겠지. 최대한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하시즈메였지만 상대가 니시와키인 이상 그에게 승산은 없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하하..”

니시와키의 품 안에서 사그라든 작은 웃음소리가 안타까워 다시 한 번 하시즈메를 꼬옥 껴안은 뒤 힘없이 서 있는 하시즈메를 테이블로 이끌었다.

“자, 식기 전에 먹어야지.”

방금 닿았을 때 옷 너머로 느껴진 하시즈메의 몸이, 요즘 바쁜 나머지 잠은커녕 며칠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기억하는 것보다 가늘어진 것을 깨달은 니시와키가 여기서 더 마르면 가만 안 있을 거라며 타박하듯 장난스럽게 덧붙이자 그제서야 하시즈메가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니시와키 씨는 식사 다 하셨어요? 괜히 저 때문에 다 못 드신 건...”
“아냐 아냐. 난 다 먹었어. 그러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먹어.”

그제야 미안한 맘을 접은 듯 식사에 집중하는 하시즈메의 모습을 마주 앉아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흐뭇하게 지켜보는 니시와키의 계속되는 시선이 부끄러운지 하시즈메가 물어왔다.

“니시와키 씨도 궁금하세요?”
“응? 뭐가?”
“저희 집안이나 이것저것.”
“시노에 관한 건데 안 궁금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시노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괜찮아. 라고 가볍게 덧붙이는 니시와키의 말에 그럴 줄 알았다며 하시즈메가 미소 지었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고 숨길 생각도 없으니 궁금하신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서로를 알게 되고 연인 사이가 된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짧다고도 말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서로의 가족 이야기는 거의 한 적도 없고 아는 것도 많지 않다는 사실은 예전에 니시와키에게 도착한 편지로 인해 깨달은 뒤 계속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럼...”

그런 하시즈메의 의도를 깨달은 니시와키가 이런 기회를 보낼 이유는 없다.

“아까 시노가 형님과 대화할 때 시노가 ‘저희가 어떻게 가겠어요.’라고 한 걸 들었는데...”
“아아...”

낮의 대화에서 니시와키를 신경 쓰게 만든 것은 하시즈메가 ㅇㅇ종합병원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보다 ‘할아버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내비친 하시즈메의 곤란하단 표정과 말이었다.

“으음...이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조금 길어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라고 묻는 하시즈메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주자 하시즈메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ㅇㅇ종합병원은 외가 쪽이 운영하는 병원이에요. 그리고 지금 원장으로 계시는 분은 아까 오셨던 큰형님의 아버지이자 제 큰삼촌이시구요.”

하시즈메의 어머니는 아들만 둘이던 집안에서, 특히 하시즈메의 외조부가 애타게 기다리던 딸이었고 힘들게 가진 딸이니만큼 부모와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금지옥엽인 딸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당시 도쿄대의 강사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하시즈메의 외조부는 주위에 대단한 집 자제들을 놔두고 웬 강사 나부랭이와 결혼을 하냐며 격노하였고 딸을 감금한 채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던 여리고 착한 딸이 가둬놓은 집의 2층에서 필사적으로 뛰어내리려고 하는 것을 뜯어말리며 그녀의 눈에서 처음 보는 고집과 강한 의지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딸을 시집보냈고, 그 강사가 지금의 하시즈메의 아버지였다. 외조부는 그들이 결혼한 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도 차마 그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집에 찾아온 사위를 얼굴도 보지 않고 내쫓거나 무시하며 매몰차게 대하였지만, 그들이 결혼한 다음해에 하시즈메의 아버지가 부교수로 승진을 하고 이듬해, 하시즈메의 집에 쌍둥이 천사가 내려오자 그제야 외조부의 사위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할아버님께서 저희 부모님의 결혼을 반대하셨고 아버지를 어여삐 여기지 않으셨다고 해도 저희에게는 너무나 다정하고 최고의 할아버지셨고 저희도 그런 할아버지가 정말 좋았어요.”

그런 하시즈메 남매가 의대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하시즈메의 외조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딸의 자식들이 자신의 아들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있는 곳에서 다 함께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외조부의 기대감도 하시즈메의 졸업이 다가올수록 커져갔다.

하지만 당연히 졸업 뒤에는 선대의 뒤를 이어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일궈놓은 성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손자 손녀가 자신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과 JDG에 들어가겠다고 한 순간, 그의 기대는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시마는 와카나 병원으로, 전 JDG에 들어가겠다고 말씀드리니 할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저희에게 소리를 지르셨어요. 너희들까지 나를 배신하냐고.”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키워왔던 딸이 자신을 떠나고, 그런 딸의 자식들도 자신의 비호 아래에 있길 거부하며 한 놈은 죽을 수도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지금이야 이시카와가 부대를 통솔하며 부대 내의 사망자의 수도 적어지고 예전보다야 그나마 여러모로 나아진 상황이지만, 하시즈메가 입대할 즈음의 JDG는 매일같이 일어나는 테러와 조직의 불안정함으로 인해 사망자도 많았고 세간에서는 위험한 직장으로 손꼽힐 만큼 불안정한 곳이었다.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병원 중 하나를 이끌어가는 병원장으로서 정계와 크건 작건 인연이 있을 그는 뉴스에 보여지는 것보다 JDG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JDG가 그의 사랑스러운 손자에게 얼마나 위험한 곳이 될지도.

“할아버님께서 염려하시는 점도 잘 알고 있었고 할아버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JDG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딸의 고집을 그대로 물려받은 남매가 그들의 의지를 꺾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외조부는 그 뒤로 하시즈메 남매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몇 번을 찾아가 뵈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격노하셔서...”

방문자가 남매인 것을 확인한 뒤 어김없이 들려오는 고함에, 남매가 마지막으로 외가의 현관문을 넘어간 것은 외조부가 더 이상 자신들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날이었다.

“계속 찾아가 뵈려고 해도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저희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안되니까 요 몇 년간은 찾아가지는 못하고 외가에 전화만 드리고 있어요. 여전히 할아버님과 대화한 적은 없지만요.”

이야기를 마친 뒤 씁쓸하게 웃는 하시즈메의 모습에 니시와키가 앉아있는 하시즈메 뒤로 돌아가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 아무런 반항 없이 니시와키의 가슴에 머리를 맡기는 하시즈메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 후회하지 않아요.”

JDG에 들어와서 위험한 일도 있었지만 자신을 신뢰해주는 대원들을 만났고, 부족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은사를 만났고, 함께 좋은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이자 동료들을 만났으며,

“당신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기적같이 자신의 마음이 통하여 현재 자신은 그 상대와 함께하고 있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까 할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만일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에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만큼 자신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기대고 있던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맞춰오는 하시즈메의 옅은 갈색의 눈동자에 니시와키가 그대로 고개를 숙여 하시즈메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긍지와 자신을 향한 애정으로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사랑스러웠다.

“할아버님께서도 분명 시노가 행복하다는 거에 기뻐하실 거야.”
“네. JDG에 있는 걸 반기진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분명 함께 기뻐해 주실 거에요. 병원에서는 호랑이 원장님으로 불리셨어도 저희에겐 한없이 약하신 분이셨으니까요.”

다음번에 한번 찾아가봐야겠네요. 라고 덧붙이며 웃는 하시즈메가 예뻐 머리칼을 쓰다듬자 그런 니시와키의 손에 얼굴을 부비며 하시즈메가 장난스럽게 물어온다.

“니시와키 씨가 함께 가주실래요?”
“시노가 원한다면.”

분명 하시즈메의 어머니가 하시즈메의 아버지를 소개할 때 받았을 대접보다 더한 것을 각오하고 가야겠지만. 물건들이 날아올 건 둘째치고 일단 하시즈메의 외조부의 혈압과 외조부에게 홀대받는 자신을 보며 하시즈메가 받을 상처가 걱정된다.

그런 니시와키를 보며 하시즈메가 살짝 웃으며 니시와키의 손바닥에 가볍게 키스했다.

“고마워요, 니시와키 씨.”

장난스럽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대답해 준 니시와키의 마음을 알기에 그런 니시와키가 고마웠다. 하지만,

“언젠간 꼭.”

자신이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인 이 사람을 꼭 자신의 소중한 가족에게 소개할 것이다. 당신이 반대한 남자와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어머니를 결국 인정하신 것처럼, 결국은 손자의 행복을 인정해주실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응.”

언젠가 그 날이 오길 간절하게 기원하며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온기를 공유했다.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April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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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쓰고 5월 말에 올리는 센스...

어찌어찌해서 마무리를 지은 절벽 위의 꽃 시리즈 2편입니다...원래는 가볍게 짧게 쓰려고 했던 내용인데 뭔가 쓰다 보니 이것저것 혼자 설정을 붙이게 되고 점점 더 길어져서 요 몇 년간 쓴 글 중에 가장 길게 쓴 것 같네요;;

1편에서도 써놨지만, 이 시리즈는 오로지 「일명 사실은 대단한 집안의 도련님인 시노 씨가 보고 싶어!」 라는 일념 하나로 탄생한 시리즈입니다. 원래 처음 시작한 망상에서는 이렇게까지 큰 집안은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점점 더 엄청난 집안으로 거듭난 것 같아서 너무 나갔나 싶기도 한데 어차피 [if]니까 괜찮아-라며 자위 중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더 나갈 예정이라는 게 문제;;)

만약 실제로 시노 씨 집안이 대단한 집이었다면 니시양이 시노 씨 집에 가서 ‘아드님을 제게 주십쇼.’라고 말하고 허락을 받기까지 더더욱 험난한 길이 펼쳐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그 험난한 길을 가는 니시양도 보고싶...(니시와키 씨 팬분들께 죄송)

느긋느긋한 페이스로 앞으로 더 이어질 예정이니 다음 편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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